성남이혼전문변호사 역사와 자연이 포개진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 ‘명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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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266회 작성일 26-08-10 16:49본문
성남이혼전문변호사 강화 정족산의 자연지형을 따라 삼랑성, 정족산사고, 사찰림과 옛길 등이 어우러진 전등사 일대가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10일 예고했다.
전등사 일원은 예부터 자연경관과 역사·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국가의 불교 의례, 조선시대 기록유산의 역사가 쌓여 있으며 이색(1328∼1396)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유람 기록이 남아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고려가 몽골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던 시기에는 삼랑성 안에 임시 궁궐이 들어섰다. 정족산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160여명의 공격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정족산사고가 설치됐다. 조선 왕실은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과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 5곳의 사고에 조선왕조실록 등을 나눠 보관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과 고지도에는 정족산과 전등사의 역사와 경관이 기록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삼랑성과 전등사, 사찰림과 노거수, 옛길 등이 자연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경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산지가람의 입지와 자연지형에 순응한 산성과 사찰의 배치가 뛰어난 경관적 가치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강남은 진짜 좋은 동네다. 직장 가깝지, 공공편의시설 많지, 학군 좋지, 교통은 얼마나 편리한지. 지하철역 밀집도는 말해 뭐하며 버스 하나로 안 닿는 곳이 없고, 길 정비도 잘돼 운전하기도 편하다. 나처럼 주로 경기권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강남에 가면 포트홀 없는 매끈한 도로, 합리적 신호체계에 얼마나 감탄하는지 모른다. 모든 게 좋다. 이 정도로 좋은 동네는 전국에서 강남밖에 없다.
물론 그 ‘수많은 장점’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은 강북 도심에 채소를 공급하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특히나 반포동 같은 동네는 지대가 낮아 큰 폭우가 내리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장마철, 잠원동 나루터에서 타고 다니던 나룻배가 끊어지면 사람들은 동작동 이수교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탔다고 한다. 강남에 오랫동안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이유였던 침수피해는 1970년부터 제방도로가 건설되고, 무엇보다 1973년 춘천에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부터 강남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만원도시 서울의 ‘인구 분산’이 목적이었다. 게다가 1968년 1·21사태가 발생하며 안보가 지상과제가 되자 휴전선으로부터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강북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곧 유신이 선포되었으니 국가의 조치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1975년 현재의 호찌민시인 사이공 함락은 강북 인구의 분산과 강남 개발에 지상명령을 부여했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강북을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설정해 제조업체와 백화점, 도매시장 등의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1973년엔 무려 강북 도심 건물의 신축과 개축, 증축을 금지했다. 동시에 강남은 개발촉진지구로 선정됐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아무런 규제 없이, 특별법에 따라 취득세와 재산세가 면제되는 강남으로 옮겨갔다(송은영, <서울탄생기> 푸른역사 2018).
아파트는 또 어떤가. 1976년 ‘도시계획법 시행령’을 개정해 ‘아파트지구’ 제도가 도입됐다. 반포, 압구정, 잠실 등 강남을 상징하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졌다. 1980년엔 기존 토지소유권이나 도시계획 법률을 무력화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돼 개포·고덕 지구가 만들어졌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정치적 기반을 만회하려 내세운 ‘주택 500만가구 건설’을 위해서였다.
베드타운이 되지 않게끔 대법원·검찰청 등 정부기관을 이전했고, 강북에 산재하던 고속터미널을 한데 모아 강남고속터미널을 만들었으며, 경기고·휘문고 같은 명문 고교를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강남으로 이전했다. 한마디로 강남은 발전주의 시기, 권위주의 국가가 일부러 선택하고 집중 육성한 결과물이다. 민주화가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자 강남은 멈추지 않는 페달로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특정시설제한구역 같은 방법을 쓸 수 없지 않은가. 이후 국가가 아무리 신도시를 만들려고 해도 강남처럼 ‘모든 게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니 ‘한집에 오래 살았을 뿐인데’ 고액의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연은 안타깝지만,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1986년 서울 가구당 연평균소득은 약 600만원,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35평 매매가가 약 6000만원이었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2024년 서울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약 6000만원, 똑같은 아파트가 44억이 됐다. 평균소득이 10배 뛸 동안, 똑같은 집이 70배가 넘는 가격이 돼버린 것이다. 소득 대비 엄청난 자산가격 상승은 운이 좋거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방법이 맞는지, 어떤 나은 대안이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의 자산가격이 국가의 뒷받침으로 형성됐고,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체 국면에 있던 자동차, 기계장비 등 대부분의 제조 업종 생산이 반등하고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가 나왔다. 다만 ‘고용 없는 성장’ 기조가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DI는 10일 발표한 ‘KDI 경제동향 8월호’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설비투자가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소비도 내구재를 중심으로 증가 폭이 확대됐다”며 “서비스업의 양호한 흐름이 이어진 가운데 제조업도 반등하면서 전산업생산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KDI는 특히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6월 전산업생산에서 자동차(12.6%), 기계장비(14.4%), 전기장비(8.8%) 등 대다수 제조업종이 전년 동월 대비 반등한 점에 주목했다. 반도체(2.2%)와 광공업생산(5.8%) 역시 상승세를 유지했으나, 기저효과로 증가 폭은 완만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비스업 생산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금융·보험업(9.2%)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13.7%)이 전체 서비스업 생산을 견인한 가운데, 도소매업(4.1%)과 숙박·음식점업(1.0%) 등 내수와 밀접한 업종도 개선 흐름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소비 지표 역시 개선됐다. 6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를 앞둔 선반영 효과로 승용차(12.2%) 판매가 크게 늘었고, 가전업체의 환급 행사 등에 힘입어 가전제품(13.1%) 소비 증가 폭이 확대됐다.
건설투자의 경우 업종별 편차를 보였다. KDI는 “주거용 건축을 중심으로는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비주거용 건축은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6월 경상 건설기성에서 주거용 건축은 전년 동월 대비 8.7% 감소한 반면, 비주거용 건축은 22.9% 급등했다.
반면 고용 시장 둔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봤다. KDI는 “전년동월비 6월 취업자 증감(6만3000명)은 전월(-4만명)에 비해 개선됐으나, 여전히 1분기 평균(18만3000명)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물가 상승세와 비교해 노동자 임금 상승 폭은 완만하다고 진단했다. KDI는 “지난 2월 특별급여(성과급, 상여금 등) 급증에도 1~5월 상용근로자의 실질급여 평균 상승률이 0.8%에 그쳤다”고 짚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3.2%)보다 낮아진 2.8%를 기록했으나, KDI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어 물가와 고용 여건에 대한 경계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유산청은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10일 예고했다.
전등사 일원은 예부터 자연경관과 역사·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국가의 불교 의례, 조선시대 기록유산의 역사가 쌓여 있으며 이색(1328∼1396)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유람 기록이 남아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고려가 몽골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던 시기에는 삼랑성 안에 임시 궁궐이 들어섰다. 정족산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160여명의 공격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정족산사고가 설치됐다. 조선 왕실은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과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 5곳의 사고에 조선왕조실록 등을 나눠 보관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과 고지도에는 정족산과 전등사의 역사와 경관이 기록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삼랑성과 전등사, 사찰림과 노거수, 옛길 등이 자연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경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산지가람의 입지와 자연지형에 순응한 산성과 사찰의 배치가 뛰어난 경관적 가치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강남은 진짜 좋은 동네다. 직장 가깝지, 공공편의시설 많지, 학군 좋지, 교통은 얼마나 편리한지. 지하철역 밀집도는 말해 뭐하며 버스 하나로 안 닿는 곳이 없고, 길 정비도 잘돼 운전하기도 편하다. 나처럼 주로 경기권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강남에 가면 포트홀 없는 매끈한 도로, 합리적 신호체계에 얼마나 감탄하는지 모른다. 모든 게 좋다. 이 정도로 좋은 동네는 전국에서 강남밖에 없다.
물론 그 ‘수많은 장점’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은 강북 도심에 채소를 공급하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특히나 반포동 같은 동네는 지대가 낮아 큰 폭우가 내리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장마철, 잠원동 나루터에서 타고 다니던 나룻배가 끊어지면 사람들은 동작동 이수교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탔다고 한다. 강남에 오랫동안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이유였던 침수피해는 1970년부터 제방도로가 건설되고, 무엇보다 1973년 춘천에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부터 강남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만원도시 서울의 ‘인구 분산’이 목적이었다. 게다가 1968년 1·21사태가 발생하며 안보가 지상과제가 되자 휴전선으로부터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강북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곧 유신이 선포되었으니 국가의 조치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1975년 현재의 호찌민시인 사이공 함락은 강북 인구의 분산과 강남 개발에 지상명령을 부여했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강북을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설정해 제조업체와 백화점, 도매시장 등의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1973년엔 무려 강북 도심 건물의 신축과 개축, 증축을 금지했다. 동시에 강남은 개발촉진지구로 선정됐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아무런 규제 없이, 특별법에 따라 취득세와 재산세가 면제되는 강남으로 옮겨갔다(송은영, <서울탄생기> 푸른역사 2018).
아파트는 또 어떤가. 1976년 ‘도시계획법 시행령’을 개정해 ‘아파트지구’ 제도가 도입됐다. 반포, 압구정, 잠실 등 강남을 상징하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졌다. 1980년엔 기존 토지소유권이나 도시계획 법률을 무력화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돼 개포·고덕 지구가 만들어졌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정치적 기반을 만회하려 내세운 ‘주택 500만가구 건설’을 위해서였다.
베드타운이 되지 않게끔 대법원·검찰청 등 정부기관을 이전했고, 강북에 산재하던 고속터미널을 한데 모아 강남고속터미널을 만들었으며, 경기고·휘문고 같은 명문 고교를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강남으로 이전했다. 한마디로 강남은 발전주의 시기, 권위주의 국가가 일부러 선택하고 집중 육성한 결과물이다. 민주화가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자 강남은 멈추지 않는 페달로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특정시설제한구역 같은 방법을 쓸 수 없지 않은가. 이후 국가가 아무리 신도시를 만들려고 해도 강남처럼 ‘모든 게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니 ‘한집에 오래 살았을 뿐인데’ 고액의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연은 안타깝지만,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1986년 서울 가구당 연평균소득은 약 600만원,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35평 매매가가 약 6000만원이었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2024년 서울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약 6000만원, 똑같은 아파트가 44억이 됐다. 평균소득이 10배 뛸 동안, 똑같은 집이 70배가 넘는 가격이 돼버린 것이다. 소득 대비 엄청난 자산가격 상승은 운이 좋거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방법이 맞는지, 어떤 나은 대안이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의 자산가격이 국가의 뒷받침으로 형성됐고,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체 국면에 있던 자동차, 기계장비 등 대부분의 제조 업종 생산이 반등하고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가 나왔다. 다만 ‘고용 없는 성장’ 기조가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DI는 10일 발표한 ‘KDI 경제동향 8월호’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설비투자가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소비도 내구재를 중심으로 증가 폭이 확대됐다”며 “서비스업의 양호한 흐름이 이어진 가운데 제조업도 반등하면서 전산업생산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KDI는 특히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6월 전산업생산에서 자동차(12.6%), 기계장비(14.4%), 전기장비(8.8%) 등 대다수 제조업종이 전년 동월 대비 반등한 점에 주목했다. 반도체(2.2%)와 광공업생산(5.8%) 역시 상승세를 유지했으나, 기저효과로 증가 폭은 완만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비스업 생산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금융·보험업(9.2%)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13.7%)이 전체 서비스업 생산을 견인한 가운데, 도소매업(4.1%)과 숙박·음식점업(1.0%) 등 내수와 밀접한 업종도 개선 흐름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소비 지표 역시 개선됐다. 6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를 앞둔 선반영 효과로 승용차(12.2%) 판매가 크게 늘었고, 가전업체의 환급 행사 등에 힘입어 가전제품(13.1%) 소비 증가 폭이 확대됐다.
건설투자의 경우 업종별 편차를 보였다. KDI는 “주거용 건축을 중심으로는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비주거용 건축은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6월 경상 건설기성에서 주거용 건축은 전년 동월 대비 8.7% 감소한 반면, 비주거용 건축은 22.9% 급등했다.
반면 고용 시장 둔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봤다. KDI는 “전년동월비 6월 취업자 증감(6만3000명)은 전월(-4만명)에 비해 개선됐으나, 여전히 1분기 평균(18만3000명)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물가 상승세와 비교해 노동자 임금 상승 폭은 완만하다고 진단했다. KDI는 “지난 2월 특별급여(성과급, 상여금 등) 급증에도 1~5월 상용근로자의 실질급여 평균 상승률이 0.8%에 그쳤다”고 짚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3.2%)보다 낮아진 2.8%를 기록했으나, KDI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어 물가와 고용 여건에 대한 경계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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