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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법률사무소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물감과 싸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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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241회 작성일 26-08-0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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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법률사무소 아마추어 화가들을 가르칠 때 자주 받았던 질문 하나가 ‘물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제대로 된 색이 나오느냐’였다. ‘많이 그리고, 물감을 여러 방법으로 써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고 답했다.
상당히 무책임한 답이었지만 사실이다. 물감을 다루기 왜 어려운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연필, 목탄, 붓을 들고 사물과 대상을 보고 그리는 일은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다. 이건 과학과도 다르고, 일도 아니며, 관광도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그걸 손을 통해서 다시 뭔가가 세상에 존재하도록 하는 일은 실제로 해보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연필, 목탄, 물감 따위가 말을 듣지 않는다.
물감과 같은 사물들이 저항한다고 해야 할까? 모든 물질은 그냥 그대로 있고 싶어 한다. 물감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서로 섞여 새로운 색이 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조금만 배합이 달라도 원하는 색은 나오지 않고, 칠하고 나면 주위 색과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가가 그리는 것을 눈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셀럽 아마추어 화가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도 물감을 잘못 다루는 데서 발생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혹은 애초에 명확한 의도가 없으므로, 물감을 마구 바르거나 필요 이상으로 쌓아 올린다. 아니면 물감과 싸운다. 물감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므로.
사실 그림의 진정한 즐거움은 사물들의 저항에 있다. 물질들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그림들은 식상하다. 그것이 상업용 그림들이다. 전문가의 그림들이라도 저항의 흔적이 없는 그림은 거의 죽은 그림이다.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다. 어딘가 저항의 흔적, 고심의 징후가 남아 있어야 그림은 그림다워진다.
그렇다고 생경한 물질이 그냥 남아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긴장이 있어야 한다. 그냥 있고 싶어 하는 물감과 그것을 길들여 적절한 곳에 붙여 놓으려는 그리는 자의 의도 사이에 말이다.
이 긴장이 팽팽할 때 그림은 힘이 있다. 물질인 물감의 힘, 그걸 다스리려는 화가의 힘 사이에서 형성된 줄다리기가 그렇게 만든다. 좋은 그림에는 늘 그것이 있다. 미술사에 이름이 남은 탁월한 작가들의 그림 속에는 그 긴장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알아볼 수 있으면 적어도 보는 눈은 전문가의 눈에 가깝다.
눈과 손 사이의 영원한 갈등. 그 갈등 사이에 아마추어도 있고 전문가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눈은 그냥 눈이 아니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마음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메를로퐁티에 따르자면 마음으로 보는 것은 눈이라는 생체 기관에 생각을 실어 사물을 쳐다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음이 실린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그 느낌을 역시 마음이 실린 손으로 무언가 위에 옮겨 놓는 것이다. 그 행위 속에는 즐거움, 기쁨, 괴로움, 망설임 등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인생보다도 더 복잡하고 심원한 일이기도 하다. 사진은 물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는 어느 갤러리의 큐레이터 뒷모습이다.
근래 간만에 공영방송의 가치를 느꼈던 순간은 부산MBC의 주도로 8개의 지역 MBC가 참여한 8부작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한국의 둘레길>을 볼 때였다. 부산의 갈맷길로 시작해 포항의 해파랑길로 끝나는 이 다큐는 각 지역 방송사가 큰 틀에서의 형식적 합의만 한 상태에서 각각 자기 지역의 주요 둘레길을 각자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해석해 매 회 새롭게 보는 맛이 있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을 통해 방영해 준 덕에 수도권 시청자로서 방에 편히 앉아 자연이 선물한 절경부터 각자의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길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본인 지역의 길을 소개하는 각 방송사의 접근법을 보는 재미가 컸다. 가령 여수MBC가 담아낸 금오도 비렁길은 살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지만, 카메라는 관광객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공식적인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고구마를 수레로 나르기 위해 산길을 다지고 섬을 지키던 주민들의 기억을 담아낸다. 둘레길은 지역자치단체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기획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긴 둘레길을 이루는 길 다수는 오랜 시간 지역사회를 연결해 온 자생적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매 회마다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든 이 다큐멘터리는 지역 MBC들의 조직적 참여가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간만에 공영방송다운 프로젝트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한국의 둘레길>은 앞으로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 지난 6월 발의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안(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 대표 발의) 기준에선 공영방송 제작물이 아닐 수도 있다.
지상파 및 케이블 TV를 포함한 기존 시청각 미디어는 방송법으로, 인터넷 프로토콜 기반의 IPTV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으로 규율하는 현재의 이원화된 구조는 그 자체로도 한계가 있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등 새롭게 등장하는 시청각 미디어를 규제할 일관된 법적 기준을 위해서도 법령은 정비되어야 한다. 이 모두를 통합해 규율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발의는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법안의 각론에서 아쉬운 점은 그동안 방송법에서 제대로 규정되지 않던 공영방송의 범주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지역 MBC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공공영역 시청각 미디어를 다루는 법안 제3장의 첫 조항인 18조와 19조는 공영방송의 의무와 국가 지원에 대해 다룬다. 다만 공공영역 미디어로 공영방송과 지상파방송, 보도채널 등의 개념 구분을 하면서도 어느 사업자가 공영방송인지 정확히 규정하진 않는데, 서비스 대표자 임명을 다루는 26조에서 타 보도채널 사업자와 구분해 공영방송으로 따로 분류한 듯한 사업자로 1. 한국방송공사, 2.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 출자자인 방송사업자, 3. 한국교육방송공사를 지정한다. 순서대로 흔히 공영방송으로 분류되는 KBS, MBC, EBS니 문제없는 분류 같지만 문제는 2번이다.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 출자자인 방송사업자는 서울MBC 본사에 한정되며, 그 서울MBC가 최대 주주인 총 16개 지역 MBC는 여기에 속하지 못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선 십분 공감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 건 그래서다.
기존 방송법에선 아예 공영방송 사업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의무 조항도 없던 만큼 어쨌든 이번 법안이 진일보한 게 맞고, 지역 MBC가 배제된 문제는 각론에 대한 수정 및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 사고체계에서 비수도권이 제외되는 건 낯설지 않은 일”이며 “지역은 서울·수도권의 부속이 아니“라는 언론노조 MBC본부의 일갈은 곱씹을 만하다. 공영방송으로서의 MBC를 규정하면서도 그것을 오직 서울에 있는 MBC 본사로만 표상하는 것은 지역 MBC를 배제할 의도까진 아니었다 해도 일종의 부속적인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 네트워크는 중앙인 서울로 지역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사형 모델이 된다. 분명 <한국의 둘레길> 같은 프로그램은 서울·수도권 시청자들에게 지역의 모습을 높은 해상도로 제공해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모든 담론을 블랙홀처럼 빨아먹는 서울을 ‘배제’하고 지역 MBC들끼리 교류하며 타자화되지 않은 둘레길의 의미를 담아내려 한 프로젝트기도 하다. 가령 관광 코스로 가장 유명한 둘레길인 제주 올레길을 다룬 제주MBC는 서울 여행객의 두근거림 대신 망가지는 제주 자연의 유언을 담는 기분이라는 소리 채집가의 비장함을 전한다. 이것은 제주에게 매우 시급한 문제인 동시에 또한 각자의 둘레길이 소중하듯 모두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 네트워크는 서울에 종속된 방사형 모델이 아닌, 각각 빛나면서 또한 연결되는 방식을 통해 그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별자리 모델에 더 가깝다. 2020년 광주MBC, 여수MBC, MBC경남이 각각 광주와 순천, 진주의 삶과 청년의 목소리를 소개하고 공유한 <친애하는 나의 도시> 같은 프로젝트 역시 그러하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 방송사의 자율성과 연결의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지키려 하지 않으면, 결국 인구를 포함한 수많은 자원이 그러하듯 이 네트워크가 생산하는 담론은 결국 서울에 유리한 방식으로만 종속 및 흡수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왜곡된 상을 만들어낸다.
가장 강력한 예시는 21세기 들어 공영방송의 최대 보도 참사라 할 세월호 관련 오보다. 전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오현 교수와 그의 지도로 박사 과정을 밟은 김철원 광주MBC 기자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발표한 논문 <‘지역’이 바라본 세월호 보도 참사 - 목포MBC 기자들의 세월호 참사 뉴스 생산의 경험과 회고를 중심으로>에선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비롯해 현장의 목포MBC 기자들이 생산한 보도를 서울MBC가 외면하거나 배제하며 벌어진 문제들을 다룬다. 해당 논문의 인터뷰이인 목포MBC 세월호 취재기자들은 자신들이 취재한 단독 보도들이나 문제 제기가 묵살당한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서울MBC 수뇌부의 정언유착을 의심하는 동시에 이차적으로는 서울 구성원들의 지역 MBC에 대한 무시가 있다고 보았다. 가령 이미 목포MBC에서 작성해 서울에 보낸 기사인데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같은 내용의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고서야 확인을 요청하거나, 목포MBC에서 만들었거나 발제한 아이템을 서울MBC 단독 보도인 것처럼 활용하는 식이다. 한 인터뷰이는 서울이 지역 현안을 수비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는 그냥 신변잡기, 사건·사고, 제철음식 딱 그거 세 개”. 다행히 그들은 자괴감에 무너지지 않고 목포MBC 자체 보도를 통해 할 일을 했지만, 만약 그들의 취재 내용이 서울MBC를 통해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더라면 당시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인식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방식은 그때와 꽤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놀이터 부지 선정이라는 미시적인 정치 활동에서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 <놀이터 민주주의>를 2021년 방송한 것도 지역 방송사인 MBC경남이라는 건 흥미로운 우연이다. 아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현재 발의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중 첫 번째로 “민주적 공론장 형성과 활성화에 기여”할 것을 요청한다. 당연하면서도 매우 중차대한 조항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공론장 안에서 시민들이 숙의해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쪽수 싸움이나 정책 쇼핑을 넘어 다원적 가치를 보존하고 합의에 의한 자발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자원과 담론이 서울을 향해 휘는 왜곡된 중력장은 현재 공론장의 이상을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불평등 중 하나다. 이러한 불평등의 조건을 인식하고 맞서는 과정을 통해서만 민주적 공론장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으며 이 싸움의 중요한 주체가 지역 방송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러니 “지역 공영방송 역시 서울 공영방송의 부속이 아니”라는 언론노조 MBC 지부의 성명은 더 과감해도 된다. 민주적 공론장에 기여할 공영방송의 진정한 중심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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