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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기술이 여성을 기억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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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6-08-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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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광복절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홀로그램 상설 전시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름조차 알기 어려웠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눈앞에서 만나 한 분 한 분의 삶을 되새길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는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확보하기가 3배가량 어렵다고 한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역할을 맡거나 보조자로 저평가돼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5년 전 이맘때쯤 봤던 ‘영원한 증언’ 전시가 떠오른다. 김주섭 서강대 교수팀이 수년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으고, 관람객이 할머니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인터랙티브 전시였다.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할머니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슴이 먹먹한 한편, 평소 모습 그대로이면서도 실제보다 크게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받은 질문지에는 위안부와 관련된 질문뿐 아니라 어떤 가수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소소한 질문도 있었다. 덕분에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삶이 한층 또렷하게 와닿았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AI가 여성을 위해 이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기술은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재현해왔다. 에버, 소피아, 에리카와 같은 여성형 안드로이드 로봇은 모두 젊은 여성의 얼굴을 가졌다. 그 얼굴은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얼굴이다. 반면 남성형 안드로이드는 실재하는 남성의 이름과 얼굴을 본떴다. 이시구로 히로시와 헨리크 샤르페라는 로봇공학자들은 자신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알버트 휴보’는 아인슈타인의 얼굴에 휴보의 몸을 가졌다. SF 작가 필립 K 딕을 본뜬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중년 남성이다.
챗봇도 비슷하다. 글로벌 챗봇 플랫폼 chatbots.org에 등록된 챗봇 중 63.6%가 성별이 있으며 이 중 76.94%는 여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여성형 챗봇은 주로 고객 서비스와 영업, 홍보 등 분야에서 사용된다. 유일하게 남성형 챗봇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분야는 ‘복제’였다. 유명 인사나 역사적 인물처럼 실존 인물을 재현하는 챗봇은 대부분 남성의 이름과 아바타를 내세웠다.
기술 속 여성은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이 주로 해온 역할을 대신할 뿐 자신만의 이름을 가진 개별 여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재현의 대상이 실존하는 여성일 때도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컴퓨터 영상 처리 시험용 표준 이미지로 복제됐던 레나 포르센의 사진이다. 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무수히 복제된 ‘레나 이미지’에서 레나라는 한 여성의 고유한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 여성 독립운동가 홀로그램 전시 역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성을 익명화하고 대상화해온 디지털 기술이 여성의 이름과 경험을 기록해 가시화하는 일에 쓰였기 때문이다. 여성을 지우던 기술이 여성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된다니 오랜만에 기술에서 발견한 희망이다.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속도 자체가 목표가 되는 순간은 경계가 필요하다. 목표에 이르는 길에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당부하면서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지와 기반시설의 중요성을 지목하면서 “관련 절차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 소요 시간을 대폭 줄이고 규제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고, “정부 자체가 혁신 모델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절박한 의지로 속도전에 나선 상황은 충분히 이해된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반도체 초호황을 맞은 현재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분기점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던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라는 두 반도체 공룡이 유례없는 수준의 이익을 거둬들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AI는 이제 기술 발전의 수준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산업과 일상에 빠르게 확산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변화의 물결에 AI 산업의 핵심 국가로 한국이 떠오르면서, 이 호황을 길게 끌고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AI 패권 경쟁 ‘골든타임’ 판단정부, 3대 메가프로젝트 전격전전력 공급 등 사회적 갈등 우려빠르게, 그러나 제대로 해야
정부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했다. 서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전국에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확충해 미래 성장동력과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서남권 반도체 팹의 1차 완공 시점을 2029년으로, 산단에 전력 공급을 시작하는 시기를 2028년 말로 제시해 구체적 목표 시점도 공개했다.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도 적지 않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산단에 필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다.
서남권 반도체 신규 팹 4기와 충청과 영남 등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수요는 각각 6.3GW(기가와트), 18.4GW로 총 24.7GW에 이른다. 원전 24기 이상의 전력 공급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필요한 전력량의 발전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송전망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등 민감한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규모 산업시설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미국에선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집단 시위가 확산하고, 주정부 차원에서 인허가를 제한하거나 세제 혜택을 철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도에서도 물 부족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 상승이나 소음 및 환경오염 우려가 생기면서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 실제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때 정부가 ‘AI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당위만 앞세워서는 사업의 추진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는 각 시설에 필요한 전력 및 용수의 사용량과 기반시설 비용, 정부가 세우고 있는 공급 계획과 그에 따른 주민 불편 또는 편익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AI 산업의 미래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전망은 사업의 신뢰를 만드는 가장 기본이다. 지역 균형 개발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일자리 창출 및 상생 효과를 최대화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메가프로젝트 전격전의 성패는 단지 목표 시점의 달성 여부로만 평가돼서는 안 된다. 미래 성장동력을 뒷받침할 산업 인프라를 적기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용수 부족과 지역사회의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했는지도 함께 평가받을 것이다. 전격전의 성패는 빨리 짓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짓기 위해 발생하는 문제까지 얼마나 빠르게,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이번 3대 메가프로젝트는 한국 정부가 산업의 속도와 사회의 속도를 함께 맞춰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적인 정책 능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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