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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선선해도 낮엔 34도 안팎 무더위···동해안 비·내륙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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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6-08-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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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해제된 13일 전국 낮 최고기온은 최대 34도를 보이겠다. 강원과 경상권에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전국에 구름이 많고 강원 동해안과 경상권 해안은 대체로 흐리겠다. 오후까지 강원 내륙과 제주도, 오후부터 밤사이 경남권 해안·동부 내륙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겠다.
14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강원 동해안·산지 10~50㎜, 울릉도·독도 20~60㎜, 경북 동해안·북동산지 5~40㎜, 부산·울산·경남 남해안·동부내륙 5~30㎜로 예보됐다.
충청권 내륙과 남부 내륙에는 소나기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낮 최고기온은 평년(28~32도)과 비슷한 26~34도를 보이겠다.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해제된 상태다. 다만 수도권과 충남권,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당분간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안팎으로 오르면서 폭염특보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오전 5시 현재 기온은 서울 22.2도, 인천 23.4도, 춘천 22.2도, 강릉 23.5도, 청주 22.5도, 대전 21.0도, 전주 22.7도, 광주 24.1도, 제주 25.5도, 대구 22.8도, 부산 24.6도, 울산 23.1도, 창원 24.4도 등이다.
미세먼지 농도는 원활한 대기 확산으로 전국에서 ‘좋음’ 수준을 보이겠다.
동해상에서는 물결이 1.5~3.5m로 매우 높게 일겠고, 동해안·남해안·제주도 해안을 중심으로 강한 너울이 유입될 수 있어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에 해당하는 한국 사회에서 치매는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질환이다. 하지만 막상 치매 진단을 받고 나면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까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환자마다 증상은 물론 생활환경이 달라 현실의 어려움은 다양한데, 여기에 어떤 치료제를 쓰라고 했다가 시간이 지나 그 치료제는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는 등의 변화까지 겪게 되면 당사자들의 혼란은 더욱 심해진다.
치매 예방과 돌봄, 치료, 인식 개선 활동을 펴고 있는 비영리 민간공익단체인 대한치매협회의 조범훈 회장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통합적 치매 생태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치매 복지 전문가다. 그를 지난 4일 만나 환자와 보호자의 존엄과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치료·돌봄 환경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 현장에서 치매 환자·보호자를 만나면서 국내 치매 치료 및 돌봄 환경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치매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병원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예방교육과 함께 보호자가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 돌봄 인력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료와 복지가 연결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40대에 사회복지학을 학사부터 박사까지 공부한 뒤 17년 넘게 현장에 있으면서 환자와 가족,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지역사회 복지 담당자를 만나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치매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 전체를 바꾸는 사회적 문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 현장에서 만나는 치매 환자와 보호자가 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치매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한다. 치매 진단 이후 어떤 치료를 받고, 가족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장기요양서비스는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막막하다는 것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영향을 받아, 배우자는 하루 종일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도 직장과 부모 돌봄을 병행하면서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우울감과 소진이 커지는 문제도 자주 접한다. 또한 주변 시선을 의식해 외부활동을 줄이거나 대인관계를 끊는 경우가 적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고립 문제도 크다. 그러다 보면 환자의 인지기능뿐 아니라 가족 삶의 질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
- 치매는 다양한 돌봄과 치료가 장기적으로 병행돼야 하는데, 약물·비약물적 치료와 관리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치매는 한 번의 치료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어서 단거리 경주보단 장기적인 동행으로 봐야 한다. 치료도 한 가지 방법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약물치료는 의료진의 판단 아래 환자를 지속 관리하는 중요한 한 축이며, 인지훈련·신체활동·영양관리·사회활동 등 비약물적 중재 또한 함께 이뤄져야 더 의미 있는 관리가 가능하다. 보호자들을 만나면 약만 먹어도 좋아진다거나, 약은 필요 없고 운동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한쪽만 기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치매관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약물치료와 비약물적 돌봄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임상 재평가와 적응증 조정 문제가 논의 중인데, 협회는 이 사안을 단순히 특정 의약품의 존치 여부가 아니라 환자의 치료 연속성과 선택권 문제로 보고 있다고 들었다.
“먼저 우리 협회는 특정 의약품을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고 옹호하자는 입장은 분명히 아니다. 의약품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과학적 근거와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유효성·안전성이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 다만 협회가 우려하는 지점은 정책 변화가 실제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것이다. 치매는 장기간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라 환자·보호자는 의료진과 함께 세운 치료계획에 따라 약물치료를 이어가며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갑자기 치료 선택지가 줄거나 치료 방향이 크게 바뀌면 지금까지의 치료는 물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심리적 혼란 자체가 치료 의지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각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안정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치료 연속성’ 측면에서 공백을 최소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 대부분 연로한 데다 치매로 인지기능까지 저하된 환자에겐 기존 치료제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치매 환자에겐 치료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치료·관리 방식이 바뀔 땐 충분한 설명과 상담, 단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환자마다 증상과 동반질환, 치료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의료진도 획일적인 접근 대신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충분한 준비가 없으면 환자와 가족 모두 심리적인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계속 관리받고 있다는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치매 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
- 치료 선택지가 줄어드는 부작용으로 일부 환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이나 민간요법 등에 의존하는 일이 생길 우려도 있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가장 큰 특징은 절박함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나 치료법을 과장해 홍보하는 사례도 생기는데, 협회에서도 우려하는 일이다. 환자·보호자가 정확한 의료 정보보다 광고나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면 경제적 부담은 커지고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에 관심이 생기더라도 의료진과 상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 결국 약물치료의 안정성·지속성과 함께 비약물적 관리를 통합해 환자·보호자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치매 정책도 이제는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조기 발견, 지속적인 관리, 가족 지원까지 연결되는 통합적인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목표가 완치보다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능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는 평생의 족적이 담긴 일기장이 구겨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였고, 사회 구성원이었던 한 사람의 삶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그동안 살아온 삶의 가치와 존엄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또한 숨겨진 ‘제2의 환자’라 할 수 있는 보호자의 삶과 존엄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협회도 존엄성을 지키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튜드 케어’를 핵심 가치로 해서 질환보다는 ‘사람’을 출발점으로 한 돌봄을 강조한다. 협회가 치매아카데미와 예방포럼, 독서클럽, 병원동행매니저·인지활동지도사의 양성 및 교육 활동을 펴면서, 정부와 지역사회에 종합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나서는 것도 모두 치매 당사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선생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증언했다. 당시 그는 “일본 정부가 정신대를 부인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하게 됐다”며 약 50년의 침묵을 깬 이유를 밝혔다. 그가 나서기 전에도 ‘마을 처녀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다’ 류의 풍문이 한국 내에 존재했지만, 김학순 선생의 증언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여성 인권 의제로 올라섰다. 그가 세상에 나온 8월 14일은 아시아연대회의(2012년)와 한국 정부(2017)에 의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일본 등에 위안소를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위안소에서 성착취를 당한 피해 여성의 규모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는 없다. 5만명에서 20만명이라는 피해 규모 추정치만 존재한다. 1931년 만주 점령을 시작으로 큰 피해를 당한 중국 지역에서 사례가 계속해서 발굴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총 4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중국 학계의 분석도 나온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는 형언할 수 없다. 그들의 구술은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잔인하며 참혹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상당한 피해자가 살해당했거나 살아남고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에프워드]는 전 세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현 시대에 그 기적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짚어본다.
‘위안부(Comfort Women)’는 일본 측 문서와 ‘일본군에 위안부란 것이 있더라’고 기록한 연합군의 문서 등에 등장하는 용어다. 전시에 일본 군인에게 ‘위안’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이 용어에 반발을 표했고, 대안으로 일본군(전시) ‘성노예’라는 표현이 혼용된다. 한편으로 피해자를 지칭하기에 ‘성노예’란 말의 수위가 너무 높은지라 이 역시 반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여러 이유로 ‘위안부’를 쓰는 이들은 가해자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자 일종의 용어로서 작은따옴표(‘’)를 붙이기도 한다. 이 글도 그러한 표기를 따른다.
여러 구술과 연구를 보면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위안부’로 불렸다는 것과 더불어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운영 등 일본군의 체계적인 구조를 모르기도 했다. 초경도 시작하기 전의 어린 나이에 끌려간 사례도 흔한 데다, 그 안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되짚어보기는커녕 숨기고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일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던 피해자들은 1991년 김학순 선생의 소식을 접한다. 김학순 선생의 용기에 ‘나도 말해야겠다’고 나선 이들의 증언이 하나 둘 모인 것이 현재 존재하는 ‘위안부’ 연구와 집단기억의 밑바탕이 됐다. ‘위안부’ 생존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마중물이 되며 증언에 나섰다.
1944년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일본군에 끌려간 네덜란드 여성 얀 루프-오헤른은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원제: 50년 동안의 침묵)>에서 1992년 TV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일을 전한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 온 이야기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위안부’였던 적이 없다. 우리는 ‘전쟁 강간 피해자’들이다. 일본 제국 군대에 의해 징발돼 노예가 된 사람들이었다”며 오랜 침묵을 깼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증언한 첫 유럽인이며, 평화와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을 벌여 네덜란드 국왕과 교황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중국 여성 완아이화도 ‘위안부’를 둘러싼 시선을 바로잡고 싶었음을 밝힌다. 그는 1943년 중국 산시성에서 일본군에게 무려 3차례나 끌려갔다.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으나 다시 붙잡혀 갔고, 그때마다 더 큰 고문을 겪어 영구적인 장해가 남았다. 그는 <중국의 ‘위안부’ 여성>에서 “나는 일본군이 나를 어떻게 납치해 자신들의 성노예가 되도록 강요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섰다. 일본군 병사들이 중국인들에게 자행한 잔혹 행위를 세계가 알기를 바라며, 나와 같은 고통을 겪은 모든 여성을 위해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군은 침략·점령한 사실상의 모든 지역에서 ‘위안부’와 민간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커밍아웃’이 모든 피해 지역에서 고르게 나타난 건 아니다.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무척 크게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발생한 국가들은 현대사의 격랑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 분단, 권위주의 통치 등 국가와 사회를 휩쓰는 지배적인 사상이 수시로 흔들리고 자리잡는 과정에서 여성 개인의 목소리는 나오기 어려웠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최초의 위안소는 1932년 중국 상하이로 알려져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하이난을 포함한 중국 전역으로 위안소가 확대된다. 그만큼 중국 여성의 피해가 극심했지만, 중국에서 ‘위안부’ 생존자 발굴과 담론 형성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중국 ‘위안부’ 생존자의 구술을 검증하고 기록한 책 <중국의 ‘위안부’ 여성>은 “수십 년 동안 사회·정치적 환경은 이들을 침묵하게 했고, 이들의 고통은 국민국가가 만든 영웅적인 전후 서사에서 배제됐다”며 “이 중국인 생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 20년 동안의 일”이라고 지적한다.
[플랫]중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별세…중국 본토 생존자 6명
책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도리어 형사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문화대혁명 등 정치적 움직임 하에서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여성의 정절과 순결을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1940년 중국 우한에서 일자리 광고에 속아 위안소로 끌려간 위안주린은 일본 패망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1958년 다시 고난을 맞이한다. ‘일본인을 위해 일한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비난에 처해 집도 몰수당하고 중국 북부 헤이룽장으로 강제이주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17년 동안 중노동을 했고, 1975년에야 우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이 패전 이후 오래지 않아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점도 피해자의 말하기를 둘러싼 정치적 셈법을 복잡하게 했다. 일본군이 과거 주둔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일본은 이 지역의 공적개발원조(ODA)와 해외직접투자(FDI) 주요 공여국이다.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 때문에 ‘위안부’ 운동이 어렵다는 설명은 베트남, 필리핀, 동티모르 등 여러 동남아 국가에 적용된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베트남의 ‘위안부’: 기억 없는 역사>는 베트남에도 위안소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드러나지 않은 이유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베트남에서 생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배경을 분석했다. 분단 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모두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했고, 각자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선전했다. 이는 곧 ‘위안부’의 이야기가 환영받기 어려운 정치적 공간이었음을 뜻한다.
여기에 더해 논문은 “베트남은 일본에게서 어떠한 공식적 형태의 배상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규명하려는 움직임은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일본의 ODA와 FDI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논문은 또 일본과 베트남이 대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군사협력 역시 “베트남 정부가 ‘위안부’ 공개 논의를 주저할 또 다른 이유”라고 봤다. 이 맥락에서 보면 베트남은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가 드러나기 극도로 힘든 사회다.
여러 국가의 ‘위안부’ 논의를 다룬 책 <그녀의 일생>에는 저자가 필리핀 ‘위안부’ 운동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필리핀 사회의 흐름을 평가한 내용이 담겼다. 저자는 “필리핀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많은 자금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위안부’ 운동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봤다. 시민단체가 ‘위안부’ 기념 조각상을 세운 것에 일본이 강하게 항의하자 조각상이 갑자기 사라진 일화가 대표적이다. 필리핀에선 마리아 로사 헨슨이 ‘위안부’ 문제를 처음 증언한 이후 많은 생존자가 뒤따랐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교육과정과 정부의 관심에선 벗어난 채 시민단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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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에서도 ‘잊혀진’ 생존자가 있다. 한반도 출신으로 ‘위안부’ 피해 경험을 밝힌 첫 생존자는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배봉기 선생이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오키나와에 머물렀는데,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며 그는 1945년 8월15일 이전에 입국한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975년 오키나와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이 반강제로 드러났고 언론에 노출됐다. 생전 그는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에게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0년대 당시 배봉기 선생을 도우려던 이들은 존재했지만, ‘위안부’ 운동이 불붙은 1990년대에 비하면 여러 환경이 척박했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생존자의 말하기는 민주화, 시민사회 형성, 성평등 의식 성장 등이 전제된 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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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을 보면 이들은 살아남은 후에도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처럼 ‘학습된’ 본능이 지금도 피해자의 입을 막고 있을지 모른다. 피해자에게 감히 ‘말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나도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말하기를 막는 것이 이 세상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우리 앞에 나타난 ‘위안부’ 생존자는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의 정치적 여건, 조력자, 가족들의 격려,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일본과의 경제·외교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사자의 결심과 용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세상은 ‘위안부’ 생존자의 고백을 듣게 됐다. 끝내 마음에만 묻어둔 이들, 말하고 싶어도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들까지 생각해 보면 증언 하나하나가 전부 기적이다.
그렇게 어렵게 세상에 나온 생존자들은 하나둘씩 눈을 감고 있다. 한국만 놓고 보면 정부에 등록된 이들 중 단 5명만 남았다. 생존자가 줄어가고 있는 현실은 다른 나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적과도 같은 한 분 한 분을 떠나 보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세상이 도래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위안부’ 생존자 모욕은 너무 흔하고, ‘전쟁과 성폭력 없는 세상’은 멀게만 느껴진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이 국가와 군에 의해 강제동원된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해야만 일본이 전쟁범죄 혐의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나를 여성인권운동가라고 불러주면 좋겠어요”
[플랫]경향신문이 전했던 ‘여성운동가 길원옥’의 발자취
전시 ‘위안부’ 제도는 극단적인 여성 차별과 성노예화였다. 그 극단성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보편성에서 태어났다.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든 여성 성상품화, 대상화, 성매매, 강간 문화, 성착취 등을 먹고 자란 것이다. ‘전쟁 나면 주변 여자들부터 강간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온라인에 글을 쓰는 이들을 볼 때면 성범죄를 유흥 취급하는 이 ‘가해자 마인드’를 어떻게 뿌리뽑을 수 있을지 아득해진다. 지금도 전쟁과 무력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구촌 어느 구석에선 여성들이 약소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멸시해도 마땅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가장 근본적으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착취에 내몰리고 있다.
이는 전부 여성을 사람이 아닌 ‘걸어다니는 성기’쯤으로 보는 시선의 발로다. 인류가 모든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된 건(봐야 된다고 배우게 된 건) 인류사에 비춰 아주 최근의 일이다. 여성도 인간의 범주에 끼워주는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위안부’ 생존자의 외침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왜 잊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세상은 ‘여성도 인간이다’가 실현된 세상일 것이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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